01. public Sculpture
02. Selected Project
03. Solo Exhibition
The New Case for Time 시간의 귀환 2017
인도 고아현대미술관 주관작가
‘The New Case for Time’
성동훈 초대개인전
“앤틱, 고철 등 이질적인 재료를 이용한 작가의 실험적이고 공상적인 조각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성동훈작가는 조각과 설치를 넘나드는 작품을 통해 상업주의, 소비지상주의, 도시의 퇴락 등 사회·문화적인 병폐를 꼬집는 작업을 계속해 왔다.”
The works of Sung Dong-Hun are samplings of misplaced components conjoined with incompatible counterparts. Selectively experimental in medium and whimsical in form, the compositions of reclaimed antique sculptures and obsolete gadgetry embody the intersection of robust idealism and marked delusion.
2017. 1.30-2017.2.28. Museum of Goa
Fake of The Kingdom 가짜왕국 2015
‘현시대에 대한 작가만의 시선에서
비롯된 역설적(Paradox) 표현’
1990년부터 작품 ‘돈키호테’로 주목을 받아온 성동훈 작가는 지난 25년 동안 공업용 특수시멘트와 금속의 고유한 성질을 이용해 물성을 드러낸 거대한 규모의 조각을 제작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지난 5년간 대만, 중국, 인도 등 국내외에서 제작한 작품 18점을 한 자리에 선보인다.
성동훈 작가는 철과 시멘트를 재료로 한 작업에 이어 제철소에서 가공하고 남은 용광로의 철 찌꺼기를 오랜 연구 끝에 최초로 조각의 재료로 사용하며 보다 원초적인 형태로 보여준다. 전시에 출품되는 ‘코뿔소의 가짜왕국’, ‘백색 왕국’등의 신작은 그간 작가가 사용했던 용광로 슬러지(철을 만들 때 생기는 부산물)와 같이 재료가 갖는 본래의 질감을 고스란히 노출한 작품이다. 그밖에 추락한 비행기 파편, 중국의 옛 화폐, 인도 전통의 브론즈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 작품을 선보인다.
거친 재료와 문명이 만들어낸 전통적인 재료의 혼재는 코뿔소, 사슴, 소와 같은 신화적 동물 형상으로 표현되며, 자연과 문명, 삶과 죽음, 전통과 미래에 대해 사유하게 한다. 이는 우리의 물질문명 사회가 만들어낸 실존의 문제, 변별력을 잃은 의식에 대한 발언이며 세상의 근원에 대한 질문이다.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기법으로 제작된 청화백자를 등장시킴으로써 단단하고 거친 물성에서 깨지기 쉬운 도자기를 결합시켜 음과 양, 현실과 비현실의 간극과 조화를 생각하게 한다.
2015. 6.15-7.12
사비나미술관
Fake of the Kingdom is a paradoxical expression that emerged from the artist’s perspective on the current times. The title itself connotes a “fake kingdom,” and originates from questioning the nature of our pursuit for originality as individuals or the values deemed by society to be of significance. In a way, the exhibition is also the result of serious introspection on the value of art and artists. Sung recreates this paradoxical reality into unrealistic and surreal characters by using a variety of materials and techniques, including blast furnace sludge, blue-and-white porcelain, ancient Chinese currencies, traditional Indian bronzing techniques and debris from an airplane wreck.
The Sonance of Iron Furnace 통곡-용광로의 울림 2014
대만동호철강 파운데이션 주관작가
<용광로의 쇠 울림>작품은 동호철강프로젝트에서 작업한 대표적인 작품 중에 하나이다. 3개월이라는 시간, 환경, 장소, 재료가 동일시 된 작품이며, 동호철강에서의 느낌과 재료의 물성이 하나의 캐릭터로 완성된 것이다.
철이 생산되는 환경, 동호철강이라는 장소, 자연에 의해 퇴화되고 풍화된 듯한 용광로의 철 재료, 이 3가지의 요소는 작가의 시각과 영감을 통해 동일화되어 표출되었다.
철을 생산하는 환경, 즉 쇠를 생산할 때 나오는 굉음은 철이 산업의 제품화 되는 소리이며, 환경과 장소성에서의 쇠 울림은 철에 대한 근원의 소리이다.
철제품을 생산하고 남은 산업 폐기물, 용광로 슬러지는 자연석처럼 불규칙한 표면과 오랜 세월이 묻어나오는 질감이 그 환경, 장소와 시간을 하나로 묶어내는 동일한 성질을 갖고 있다. 이 모든 요소는 작가의 관점으로 동일시되어 <용광로의 쇠 울림>이라는 작품으로 탄생된 것이다.
<The sonance of iron furnace> is one of the representative artworks working on the project of Dong Ho Steel foundation. It is identified oneself with the time of three month, the environment, the place, and the work material, moreover, there were completed one of the characters with the impression from Dong Ho Steel and a property of the material.
These three elements which are the environment of the iron production, a place called Dong Ho Steel, and the material of the iron furnace like weathered and degraded by nature, are inspired by the artist’s vision and channeled through the identif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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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llic Heroes and Demythification 2011-2013
금속의 영웅 & 탈신화 2011-2013
성동훈 ‘소리나무-행복한고묵’ 세워
국제교류의 첫 울림
‘소리나무-행복한 고목 (2011)’은 소리나무시리즈의 작품으로 대만에서 두 번째로 제작된 소리나무이다. 2010년 대만의 제 2의 도시인 카오슝시에서 제작 설치되었던 작품도 산업용 철강재료를 이용하여 자연의 상징인 나무의 형상을 이루고, 바람이 연주하는 소리나무가 설치되었다. 대만 주밍미술관은 타이페이현 북부 진산(金山)에 위치하고 있고, 3만2000평 부지 위에 세워진 350여 점의 작품들이 맞이하는 거대한 공원형 미술관이다. 조각가 성동훈의 개인전을 위해 주밍미술관 아트레지던시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미술관 부속기관인 아트팩토리에서 그의 2011년 신작들이 제작되었다. 그는 주밍미술관 아트팩토리에서 6m 높이의 소리나무작품 시리즈를 완성하였다. 미술관 측에서는 작가의 거대한 작품이 제작될 수 있도록 제작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주밍미술관 아트팩토리 제작 어시스턴트들이 그의 작품제작에 동원되었다. 대만동호철강 회사의 협찬으로 특수한 작품재료를 공급받게 되었는데, 용광로의 제련으로 파생된 파편재료로서 금속성이 짙고 묵직한 철강을 작품의 주된 재료로 사용되었다.
[I like Duke Guan]는 신격화 되어 있는 관우의 초상을 작품에 도입하였다. 세상을 지도하는 왕의 형상으로 의자에 앉아 창을 들고 좌측 발로 악어를 누르고 있는 위풍당당한 거대 초상화를 세웠다. 주밍미술관 야외 전시장에 마련된 장소에 소리나무를 중심으로 바라보고 있는 ‘I like Duke Guan’작품이 위치하고 있다. 관우는 <삼국지연의>에서 충신의 전형으로 등장하고, 송나라이후 관제묘를 세워 그를 무신 또는 재신으로 모시는 중국 민중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불교에서도 그를 호법신의 하나로 받아들여 ‘가람보살’로 숭배하기도 한다. 대만에서는 신화적 인물, 무신, 재신의 인물들을 숭배하고 복을 기원하며 그들만의 다양한 신앙으로 존재한다. 작품의 제목에서처럼 ‘I like Duke Guan’는 대만 현지의 종교와 문화적인 부분을 작품으로 표현하고, 현대인이 꿈꾸는 영웅, 그것을 신앙적으로 의미부여하는 기호를 작품에 통합하는 작가의 의도가 여실히 보여 진다.
주최/기획: 주밍미술관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밍미술관
협찬: 대만동호철강
Nomadism in Brain, Künstlerhaus Vienna 2009
‘쿤스트하우스의 주최로 추진된 <한국현대미술의 오늘-머릿속의 유목> 조각가 성동훈의 2009년 신작들과 20년 동안의 예술작품 다큐멘터리 발표
비엔나의 중심가에 있는 칼츠프라자 (Karlsplatz)공원에 근접한 거리에 놓인 쿤스트하우스 (künstlerhaus)는 오스트리아의 아트 기관들 중 가장 오래된 역사적인 전시 및 이벤트 공간으로 전해진다. 이 기관은 1861년에 [The Association of Austrian Artists Künstlerhaus]오스트리아 미술협회 쿤스트하우스 미술관으로 설립되었고, 1998년 이후 새로운 전시공간과 프로그램들을 재구성하고 국제적인 현대미술의 다양한 장르들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쿤스트하우스의 페세지갤러리(Passage gallery) 는 현대적 감각의 공간으로 회화, 조각, 뉴매디아, 설치, 영상, 필름 등의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들을 다양하게 전시를 개최하고 있다. 쿤스트하우스의 주최로 추진된 한국현대미술의 오늘-머릿속의 유목 조각가 성동훈의 2009년 신작들과 그의 20년 동안의 예술작품들을 다큐멘터리하여 발표하고, 국내외 조각공원 프로젝트와 심포지엄에서 발표했던 주옥같은 작품들을 영상과 함께 전시하였다. 특히, 성동훈작가가 기획한 제 1회 국제사막프로젝트(2006)의 다큐멘터리 필름을 상영하여 비엔나의 미술관계자 및 평론가, 주오스트리아 한국 대사관 영사, 그 외의 많은 관객들로 부터 찬사의 감사 인사를 받게 되었다. 쿤스트하우스의 기획자 피터 보그너(Peter Bogner)는 머릿속의 유목, 성동훈의 초대개인전을 기획하면서 그의 20년 동안의 작품들을 수록한 [머릿속의 유목-Nomadism of the Brain-2009] 작품집을 세계 20여 곳의 예술 기관 및 아트 인스튜트에 유치하여 그의 작품을 소개하고,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겠다고 한다.
한국현대미술의 오늘-Künstlerhaus Vienna 성동훈 특별전
2009. 7.23-2009.8.23 쿤스트하우스 비엔나, 오스트리아
머릿속의 유목 Nomadism in Brain
2009. 3.25-2009.5.10
사비나미술관
21c, Coming up with the Form of Mythological Story
21세기, 신화소를 찾다
형상의 발견, 신은 어디에 있는가!
형상은 구름이다. 구름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 중 하나는 구름이 아닌 원시적 향취가 강한 토르소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구체적 형상을 갖추었다고 해도 구름이라는 원형은 바뀌지 않는다. 그는 꿈, 생각, 믿음, ‘천천히 오는’ 속도를 떠 올린다. 이 단어들을 조합하면 ‘바이브레이션 (Vibration)’이 된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사전적으론 동요, 설렘, 감동, 떨림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구름을 상상하는 동시성의 원리는 그 내부에 앉아있는 부처에게서 찾아야 한다. 10세기 경 중국에서 그려진 <마야 부인의 꿈>을 보면, 하강하는 구름위에 둥근 원이 있고, 그 안에 흰 코끼리를 탄 부처가 있다. 이 그림은 불타의 참된 잉태와 화신을 보여준다. 성화에서도 동정녀 마리아의 꿈은 마야 부인의 꿈과 다르지 않다. 14세기, 이탈리아의 화가 Simone Cie Crociffissi가 그린 <동정녀 마리아의 꿈>은 마리아의 가슴에서 솟은 황금빛 나무를 통해 꿈의 예언을 보여준다. 나무에는 십자가에 매 달린 예수가 있다. 이미 예언은 “영원한 것이 역사 속으로 들어가거나, 역사를 바꾸기도 한” 시간의 밖을 향한다.
이 장면화의 원리는 안팎이라는 이상과 현실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는데 있다. 꿈의 실체는 영원의 찰나와 같다. 그러나 그 내부는 현실의 혼돈과 순교의 숭고함을 동시에 갖는다. 성동훈의 작품은 이러한 이분화 된 장면성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종의 내부에서 듣는 소리는 폭풍의 눈처럼 고요하다. -김종길 비평문중에서
Eros · Epitumia · The Domicile of Tabooed Desire 1998-2001
에로스 · 애피투미아 · 저지 당한
욕망의 거주지
가족은 성을 매개로 구성된다. 종족보존의 본능을 위한 것이든, 혈통의 유지를 위한 것이든, 사유재산의 적자상속을 위한 것이든, 일부일처제가 확립되면서 도덕, 윤리, 종교, 위생, 경제, 공리적 사회규범의 맥락에서 부부의 침실만을 성의 신성한 교환장소로 인정해온 것은 사실이다. 역사적 전통, 관습, 사회적 필요 때문에 일부다처제를 인정하고 있는 몇몇 나라를 예외로 한다면, 인간들은 이 제도의 유지를 위해 각종 금기와 규제를 만들었고 그것을 위반하는 사람들에게 파문, 질타는 물론 형벌을 가해왔다. 오늘날에도 보편적인 도덕관념, 질서, 사회제도의 유지를 위해 일부일처제를 바탕으로 하는 성윤리는 지켜야 할 ‘인간다운 덕목’으로 통용되고 있으나, 생식을 전제로 한 신성한 부부행위로 규정된 성을 쾌락, 욕망의 충족, 때로는 제도에 대한 도전의 한 방법으로 여겨 금기의 파기, 규제로부터의 일탈과 위반을 자행하여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남성중심의 일방적인 척도에 의해 성에 대한 억압이 거세었던 시대에도 성은 부부의 침실에만 유폐된 은밀한 것은 아니었으며, 위선적인 방식으로 거래되거나 또는 권력의 이름 아래 남성들에 의해 지배되었다. 결국 성은 우리가 교육받아온 그대로 신성한 책무도 아니고 오묘한 것도 아닌 인간의 생물학적 본능의 하나였음을 지난 날 인간들의 행적을 통해 알 수 있다. -최태만 비평문 중에서
Grotesque Humor 그로테스크 해학 1996-1997
성동훈은 아무것이나 주어진 도구를 써서 자기 손으로 무엇을 만드는, 그래서 항상 ‘육체를 부여하는’ 신화적 사고를 지닌다. 그는 우선 작업실에 쌓인 도구나 재료들을 하나하나 검색하면서 그것들이 할 수 있는 역할과 용도를 결정한다. 그의 보고(寶庫)속에 든 잡다한 물건들을 이리저리 뒤지며 각각 어떤 기호로 쓰일까 검토하고, 선택하고, 수정한다 : 철판을 자르고, 두드리고, 녹이고, 대우고, 접붙이고, 땜질하고, 연결하고, 묶고, 후비고, 끼우고, 갈고, 바르고, 칠하고… 그는 이미 만들어진 것으로 다시 만들며, 파손된 부품이나 쓰다 남은 자투리를 가지고 본래 모습을 재생하거나 아예 완전히 새것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가 여러 가지 부품들을 수집하여 갖고 다니는 이유도 ‘언제든지 쓸모가 있기 마련’ 이기 때문이다. 여기 철판 조각이 있다고 하자. 그것은 길이가 모자라는 ‘돈키호테’의 앞다리를 메우기 위해 쓰일 수도 있고 받침대로 쓰일 수도 있는데 전자의 경우에는 재료의 한 부분이 되고, 후자의 경우에는 연장이 된다. 그의 작품 대부분이 그렇듯이, 재료와 연장의 기능적 호환성(互換性)은 너무도 절묘하고 긴밀해서 무엇이 재료이고 연장인지 구별이 불가능해졌다 :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사용됐던 그라인더 블러쉬는 최후에 소의 왼쪽 눈알로 기증되고, 오토바이 머플러는 소뿔로 희생되고, 팽창과 수축작용에 민감한 용수철은 남근의 도구이자 재료로 쓰였다. 기께 부품이나 금속조각의 파편들은 동물의 신체기관을 너무 닮았기 때문에 누가 누구를 흉내낸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이다.
-윤익형 비평문중에서
The Ignorant Cow 무식한 소 1994-1996
‘풍자적 모방과 아우라의
회복에 대한 단상’
성동훈이 돈키호테에서 주목하고자 했던 것은 이와 같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광기의 소유자’이자 자신이 살고있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존재 즉, 동일자와 타자를 혼동하는 퇴행의 잔존물. 그러나 그 퇴행을 통해 우리 시대의 우스꽝스럽고 모순된 현실에 대해 고발하고 공격하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전형적인 인간의 모습이다. 성동훈은 용맹과 우둔, 지략과 몽매, 강인함과 나약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자기모순에 빠진 인간으로서 돈키호테를 상징하고 있다. 그 주인공의 모습은 대체로 그의 작품에서 모조된 형상으로 나타난다. 즉, 몸통은 이미 효율성을 상실한 기계의 부속품들로 이루어져 있는 불구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외양의 자세는 여전히 의기충천하는 기사의 형상을 하고 있는 돈키 호테를 통해 자아와 타자(세계)간의 소외, 자아와 자아와의 단절을 풍자적으로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그의 작품에 패러디적 요소가 개입하고 있음을 밝혀낼 수 있겠다.
Formative Principal of Frustration 욕구불만의 조형원리1992-1993
‘Don Quixote 1990‘
작품들이 인간의지의 직접적 실험 대상으로 생산되고 그 생산의 과정중에서 욕구와 본능의 여러 양상들이 탐색되어 진다고 보는 그의 창작 행위는 주관적으로는 인간으로서 작가 자신의 자기 동질성을 찾아내는 한 방법, 읫긱논리라고 여겨질 만큼 작가의 호흡의 깊이를 담고 있다. “뒤로 가는 것이 앞으로 가는 것이다’ ‘무식한 작업만이 살길이다’라는 작가의 그리 길지 않은 작업 활동에서 나온 간략한 단정들은 우리 미술계에서 미술적 시행착오의 반복과 그의 대한 절실한 심사수고의 결과였을 것이다. 그 만큼 우리 미술이 죽은 향식의 껍데기에 달라 붙어 절대 절명의 예술의 위기 속에서도 현실권력의 곡예를 이용해 그 미술이라는 화려한 공허를 은폐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의 작업이 돋보이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그가 적어도 이런 진실들을 올바로 인식할 수 있을 정도의 감각의 정확성은 견지해 내고 있음이 그의 말에서 뿐만 아니라 그의 작업에서도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강성원 비평문중에서